아름답고 감동적이다_씨네21 넥스트 플러스 2007/06/11 17:04 |
엄마는 늘 환상인가? 소녀는 엄마 찾아 기차를 타지만 결론은 늘 뻔하다. 엄마에게 닿지 못한다. 이런 불일치가 어떻게 봉합될 수 있을까. 대개 존재조건과 소망조건의 격차가 클 때 환상이 개입한다. 문제는 영화에서 이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고 균형점을 찾아가는가다. 김희정 감독의 첫 장편 <열세살, 수아>는 수아의 현실과 환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열세살 수아(이세영)는 자신의 엄마(추상미)를 부정하고, 인기 가수 윤설영(김윤아)이 진짜 엄마라고 믿는다. 환상은 점점 커지며, 기어이 수아는 진짜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다. 이러한 설정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과 유사하다. 여기서 어린 남매가 어머니의 거짓말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처럼, 수아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만 믿고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삶이 좀처럼 친절하지 않을 때, 익숙했던 작은 옷을 벗고 새로 맞춘 헐렁한 교복에 적응해야할 때, 수아는 열세살이다. 조용히 말하고, 숫자를 세며 걸음을 걷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안경을 닦고, 가까운 여자친구에게 야릇한 감정도, 또 쓴 배신감도 느낀다. 실재하는 것들이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 때, 소녀는 환상을 품는다. 투명한 오르골 소리와 함께하는 마술도 있다. 환상과 마술은 소녀가 사는 무채색의 세계에 원색의 생생함을 부여한다. 좀처럼 웃지 않는 수아는 환상 속에서나마 활짝 웃는다. 그 웃음엔 소리가 없다.
처음에 환상은 수아가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를 대체하는 마술, 어머니를 대체하는 음악적 환상으로 채워져 있다. 이 환상은 아버지의 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하는 야릇한 삼단논법으로 구성되어있다. '아빠는 윤설영이 진짜 엄마라고 했다. 아빠가 거짓말할 리 없다. 그러므로 울 엄마는 진짜가 아니며, 진짜 엄마는 윤설영이다'. 성장이란 이러한 아버지의 말이 거짓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때 거친 현실이 육박해 온다. 하지만 더 심층적 성숙은 아버지의 말이 본질적으로는 '거짓이 아님'을 발견하는데 있다. 아버지는 거짓이 아닌 거짓말을 했고, 그녀의 진짜 엄마는 윤설영이라는 이상한 아이러니 위에 섰을 때, 수아는 그때 열세살이다. 이제 엄마라는 환상은 좀 더 현실적으로 조율된 채 지속되지만, 죽은 아버지의 말과는 이별해야 한다.
여전히 평범한 안경 쓴 소녀, 수아의 손톱에 발린 분홍 매니큐어처럼 환상은 현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삶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환상을 포기할 것인가? 고물상에 버려진 낡은 버스가 노란 식당버스로 변신한 것처럼, 마법은 소박한 방식으로 현실에서도 조용히 기적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열세살, 수아>의 현실은 환상을 시들게 하지 않으며, 환상은 현실을 남루하게 하지 않는다. 이 둘의 적절한 균형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마침 맞다. 재능과 기교를 노출하려는 욕망을 손쉽게 들켜버리는 다른 신인감독들에 비해, 이 성급함 없는 감독의 자제심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영화에는 튀지 않게 환상을 개입시키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현실과의 균형점을 찾아낸 조곤조곤함의 미학이 담겨있다.
덧붙이는 말 하나. 청보리밭 옆으로 지나가는 노란 버스에 탄 수아가 마지막에 받아들이는 환상과 현실의 균형점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어찌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송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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